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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버지

by 한국인의생활 2025. 6. 17.

아버지 / 군인 / 화랑무공훈장

 

나를 지켜주신 아버지

내가 아빠가 되어 매일 직장으로 출근하는 이른 아침에는 문득 문득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아버지를 잊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데 어제는 달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고요한 공기속에 아버지가 찾아오셨습니다.

군인출신 답게 단정하셨던 생전 모습과 똑같이 조용히 소파에 앉아 저는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빙긋이 미소를 머금고 흐뭇해 하시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걱정할까봐 나는 잘 있다라고 걱정하시며 찾아오신 듯 합니다. 매일 새벽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늦은 밤이면 약주 한잔을 하시고 동네 어귀에서부터 봉지에 고구마 서너개를 넣어 가슴에 꼬옥 안고 조금씩은 비틀거리며 오시던 흐릿한 그 그림자가 항상 기억이 납니다. 내가 아빠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그 조금씩 흔들리던 어깨는 가족에 대한 삶에 대한 무게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퇴직 하시기 전까지는 군인이셨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감정보다는 책임감으로 살아오셨습니다.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서 누구보다도 늦게 쉬고 늘 누군가를 책임지고 계셨습니다. 어릴 때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약주 한잔을 하시고 귀가하실 때는 모두 자는 척을 했습니다. 간혹 형제들이 잘못을 할 때면 몇 년을 쌓아 두셨던 우리의 잘못을 그날 모두 회초리로 푸셨습니다. 절대 손으로 뺨을 때리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그러나 꼭 회초리로 때리실 때는 종아리에 피가 나야 그만 두셨습니다.

내가 종아리를 맞으며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삶은 늘 단단해 보였고 흔들림이 없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엔 잘 몰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강인함 뒤에는 혼자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무게와 외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삶에서 갈등하고 고뇌하셨던 아버지를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며

평소 아버지는 무척 조용하신 분이셨습니다. 내가 결혼을 한 뒤로는 더욱이 새로 맞이한 가족들이 아버지의 서툰 표현들에 상처를 입을까봐 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웃음도 말도 많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그 침묵은 늘 따뜻했고, 그 미소는 언제나 진심이셨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때 그 미소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아버지는 군인으로 퇴직을 하셨습니다. 일상에서도 무엇하나 흐릿하게 하시는 일 없으신 그 셩격을 보면 군생활을 어떻게 해 오셨는지 가늠이 됩니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연대에서 참모로 일을 하시며 화랑무공훈장을 2개나 받으셨습니다. 군에서나 가정에서나 아버지는 그렇게 생활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저는 참 많이 늦게 이해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말 수가 적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그 무심해 보이던 눈빛에, 세상 그 누구보다 깊고 단단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내  아버지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다 보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버지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한 가정을 책임진다는 것, 가장으로 한 생을 산다는 것, 힘든 날에도 가족을 웃게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우리를 안심시키셨습니다. 침을 삼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힘든 내색 없이 조용히 웃으시며 떠나신 그 모습은 아직도 제 마음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남긴 가죽장갑, 아버지가 쓰시던 오래된 손목시계, 그리고 그 웃음.
그 무엇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제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 당신께 감히 그 고마움을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걸음은 멈췄지만, 그 삶은 제 안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부드럽게 저도 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깊지만, 항상 그 그리움 속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미소, 아버지의 품, 아버지의 말 없는 사랑을 저는 언제까지나 기억하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