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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 1970~1980년대

by 한국인의생활 2025. 6. 11.

 

 

스포츠, 경제, 한국의 성장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세월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알게되면 단순한 시각적인 부분보다는 역사를 통해 공감해야 할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 성장이 시작되던 1970년대부터 성장의 정점에 이를때까지 우리가 받았던 교육, 교육환경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들의 생활등을 고스란히 이해해야 밀레니엄 시기를 거처 오늘에 이른 결과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미국을 포함한 서구 여러나라들의 문화를 알기위해서 역사를 배우듯이 한국 또한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한국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의 학창 생활

사회생활을 마무리하는 나이대의 선배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1970년 ~1980년은 유소년 시기였을 것입니다. 대도시에는 당연히 유치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 자녀들은 인원이 많고 이 인원을 수용할 학교 공간이 부족하여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학교를 다녔습니다. 수업시간이 끝나 하교를 하면 대부분 동네 골목, 공터 등에 모여 삼삼오오 구슬치기, 망치기(돌비석치기), 네모 딱지치기, 동그란 딱지치기, 땅따먹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바닥에 오징어 모양의 그림을 그려놓고 양발, 외발로 총총 걸음치어 건너가는 오징어게임, 월계놀이, 고무줄놀이, 팽이치기 등을 하며 학창 생활을 지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동전치기, 동전뒤집기, 제기차기, 연필 따먹기 등을 하고, 덥지않은 어스름이 내려앉은 저녁 또는 한밤중까지 숨바꼭질을 하다가 저녁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호통에 집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 어른들은 아직까지 뿌리깊은 유교, 불교의 종교적 생활상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어린 학생들, 중고등학생,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개신교가 활성화 되는 시기여서 주말이면 교회, 성당등에서 종교활동을 하면서 피아노, 기타, 여러 음악모임, 성경공부, 스터디 등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특히 종교활동의 경우 그 모임의 구성원들은 주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여러 다양한 학교, 다양한 취미, 다양한 목표 등을 서로 공유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청소년의 경우 교회오빠라는 용어가 생긴것 처럼 젊은이들 만의 문화가 따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환경

당시 정부에서는 불편했던 사회적 시각을 돌리기 위해 많은 스포츠 경기를 홍보하고 지원했었습니다. 특히 축구와 야구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야구의 경우에는 저학년~고학년~대학팀~실업팀에 이르기까지 재능이 있는 선수들을 키우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 모두가 열심이었던 생각이 납니다. 특히 고교야구는 전국의 모든 고교생이 응원단이라 할 정도로 많은 박수를 받았는데 황금사자기 대회, 대통령기 대회, 청룡기 대회, 봉황대기 대회 외 전국체전, 지역대회등 대회가 많아 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졸업생들을 포함해서 성인들까지 모두 응원하는 환경이었습니다. 특히 상업고등학교의 야구부끼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은행과 기업의 졸업생들이 동대문야구장 등에 몇천명씩 모이는 진귀한 풍경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아직 TV가 보급되고 있는중이라 한 동네에 한두대의 흑백TV가 있었고 이후 컬러TV로 많이들 교체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만화 에니메이션도 있었지만 일본 만화 에니메이션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프로그램으로는 로보트 태권V, 마징가Z, 우주소년 아톰, 태권소년 마루치 아라치, 뱀 베라 베로, 우주소년 빠삐, 그랜다이져, 캔디 등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고학년이 되면서 몇십대 일, 몇백대 일의 기업에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정말 치열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은 말 그대로 일상이었고 주로 학생들의 관심사는 당시에도 연애 였던것 같습니다. 고학년이 될수록 TV보다는 라디오를 통해서 상상을 하며 꿈을 만들고 편지를 쓰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학교마다 다양한 교복이 정말 예뻣습니다. 이화여고, 풍문여고, 덕성여고, 하얀 컬러에, 빵 모자를 썻던 세화여고 여학생을 포함해서 여중, 여고의 교복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예뻣습니다. 남학교는 흙에서 뒹굴로 했던 터라 특별한 교복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교련복은 딱히 옷이 많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만능 옷으로 입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부모님들이 거의 맞벌이가 많아 양말을 꿰메고, 교련복과 교복의 허리를 줄이거나 바지 통을 줄이는 바느질도 학생들이 척척 해 냈습니다. 이렇게 집단의 성격인 문화를 체험한 사람들이 회사에 들아갔으니 학연을 중심으로 더 단합이 잘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주된 나이대의 중심에 얼마전 퇴직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사회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경험했고 민주화의 어려움을 몸소 겪으신 분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직업적 환경

1980년대에 들어서는 말 그대로 경제적 활황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기위해 몸부림 치던 시기. 경제성장을 위한 국내의 자금들이 부족해서 해외로 해외로 영업을 위해 나가던 상사맨들, 어렵게 유치해온 차관 등...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직종, 많은 인원이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1970년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시기라면, 80년대에는 서울올림픽을 치루고, 이를 준비하느라 올림픽도로(88도로)가 건설되고, 건물들이 정비되고... 하는 나라 전체가 들썩일 때였습니다.

지금에서 당시를 생각하면 한 곳에서 누구는 주판을 튕길때 다른 곳에서는 카시오 전자계산기를 사용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수학적 공식으로 풀었던 통계 내용을 가지고 증권, 주식, 투자에 적용했고,,, 다른 곳에서는 달과 우주에 로켓을 쏘아올리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의 많은 직업들이 성장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글은 전체 역사를 설명할 수 없는 일부의 내용이고 일부지역에 국한된 내용이지만 당시를 떠 올리면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고, 현재 한국이 국민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외국에서 방한하는 친구들을 위해 함께 살기위해 앞으로 어떤일을 해야 하는지 미래의 그림을 그려볼 만 할것 같습니다.